[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공존하는 세상 이야기 :)

2017. 4. 13. 18:55Log : Tag : 노트테이킹/Book 오래된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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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국내도서
저자 : 이용한
출판 : 북폴리오 201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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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기의 쉐프샤우센은 떠나는 날까지도 비가 왔다. 쉐프샤우센의 파란 골목은 시간이 멈춘 듯 적막했고, 나는 오래오래 그곳에서 시간이 멈춘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너나없이 느긋했고,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바삐 이곳을 떠나는 이들은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들이었다. 만일 모로코에 가고자 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나는 꼭 말해 주고 싶다. 쉐프샤우엔은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한 번쯤 파란 골목에서 꿈꾸듯 앉아 있는 고양이들을 만나 보라고. 그들과 함게 이 산중의 바닷속을 헤엄쳐 보라고.

 


2.

사실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모로코 사람들이 특별히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아마도 고양이에게 밥을 주거나 곁에 두는 것이 그저 일상이 되었기 때문에 튺별해 보이지 않는 것일 게다. 그냥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약자에게 베푸는 배려처럼 자연스러운 것일 따름이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느 누구도 고양이를 미워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건 진실로 부러웠던 점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미워하거나 해코지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양이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3.

사실 고양이에게 불편한 현실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이지, 열악한 환경 따위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창의 골목과 배고픈 시간 속에 언제나 그들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질척거리는 빈민촌의 골목을 빠져나오며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어쩌다 지구에서 고양이 작가 같은 걸 하고 있을까.

 


4.

사랑하고, 노래하고, 고양이하라. 이스탄불에는 순전히 고양이를 보기 위해 여행을 오는 고양이 여행자들도 있다. 딱히 고양이를 목적으로 한 여행이 아닐지라도 오고 난 뒤 고양이에 빠져 자발적으로 고양이 산책가자 되는 이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스와 더불어 유럽 최고의 고양이 천국으로 불리는 터키에서, 그것도 이스탄불에서 고양이 여행을 한다는 건 말하자면 고양이 천국이 바로 이런 곳이구나, 그렇게 체험하고 실감할 수 있는 여행이다.

 


5.

하지만 이곳 고양이들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곳은 바로 옆 제이넵 술탄 사원이었다. 이곳의 물라(성직자)는 고양이를 위해 십여 채에 이르는 박스집을 만들어 주고 물과 사료도 제공하고 잇었다. 내가 사원을 찾았을 때, 사원에는 골목에 나타나지 않는 고양이도 여러 마리 거주하고 있었다. 사원의 고양이들은 노인장이 청소를 하고 있는데도 아랑곳없이 가랑이를 부비고, 빗자루 앞에서 발라당을 선보였다. 웃기는 점은 앞에 말한 세 명의 캣대디가 이곳의 고양이를 모두 자기 고양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모두의 고양이가 아닌 자신의 고양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책임감일지도 모르겠다. 저들을 보살피고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그런 책임감이라면 나쁘지 않다.

 


6.

만일 터키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여행자가 있다면 나는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사람들도 당신을 좋아할 것이다. 그럼 당신의 여행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7.

대체로 히메지마의 사람들은 다시로지마의 어부들처럼 고양이에게 물고기를 던져 주거나 눈에 보이는 선의를 베풀지는 않는다. 간혹 빵을 주거나 생선살을 섞은 밥을 내놓는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대부분은 고양이에 대해 그저 무심한 듯 보였다. 어쩌면 그 무심함이 섬 고양이들을 이제껏 평화로운 세계로 이끌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고양이에게 선의를 베풀 필요는 없다. 그보다 중용한 것은 모든 사람이 고양이에게 악의적인 행동을ㄹ 하지 않는 것이다.

 


8.

어디를 가나 길고양이의 삶은 순탄치가 않다. 일본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 다만 이곳이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그렇잖아도 힘든 묘생(猫生)에 사람들이 개입해 해코지를 일삼거나 냉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를 이 세상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9.

고양이들은 노인에게 사랑을 받고 자라서인지 낯선 이방인의 출현에도 아랑곳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밥 먹고 그루밍하고 장난치고 잠자고. 어려서부터 개와 함께 지내온 덕분인지 모든 고양이가 스스럼없이 개와 어울렸다. 아기 고양이들은 개의 면전에서 잠을 자는가 하면 개 꼬리를 잡아당기는 장난도 서슴지 않았다. 내 뒤에서 노인은 그런 모습을 그저 흐믓하게 바라만 보았다. 개는 꽤 순했다. 녀석은 혹시라도 내가 아기 고양이에게 못된 짓을 벌이지 않을까 노심초사 지켜보며 경계하는 눈치였다. 내가 사진 좀 찍으려고 아기 고양이에게 다가서면 개는 어김없이 내 앞을 막아섰다. 어미 고양이도 하지 않는 보호자 노릇을 개가 하고 있었다. 개와 고양이, 노인이 함께 사는 곳. 가난한 이들의 거주지. 최소한 이곳에서는 동물을 사랑하는 데 가난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

일찍이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말했다.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수준은 그 나라에서 동물이 어떤 취급을 받는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철저히 보호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때 이곳 사람들이야말로 간디의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1.

사실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인도 사람들보다 훨씬 풍족한 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있는사람들일수록 베풀 줄 모른다. 손에 꼭 쥔 것들을 요만큼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없이 사는 동물들의 처지를 이해하기 때문일까. 인도에 가면 이 지구가 인간만이 사는 별이 아니라 모든 동물과 식물과 사람이 함께 사는 곳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인도의 고양이는 한국의 고양이보다 훨씬 행복해 보인다.

 


12.

사람들이 특별히 더 예뻐하거나 유난히 미워하는 동물이 따로 없었다. 길 위의 모든 동물에 대해 똑같이 무심했다. 어쩌면 고양이 입장에서는 먹을 것을 두고 모든 동물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더 열악한 환경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도 인도에서는 고양이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해코지를 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13.

라오스 루앙프라방은 길고양이의 천국이다. 라오스 사람들은 풍족하지 않은 삶속에서도 언제나 같은 길 위의 개와 고양이를 거두고 먹이며 이생을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유럽이나 일본처럼 풍족한 삶이 아니기에 라오스의 길고양이 또한 풍족한 삶을 영위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곳의 길고양이 행복지수는 상당히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길고양이의 삶에 적당히 개입하고 간섭을 줄임으로써 길고양이의 고양이다운 삶을 보장한다.

 


14.

라오스의 고양이들은 도대체 낯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여행자가 지나다 만지면 만지는 대로 몸을 맡긴다. 사람은 고양이를 차별하지 않고, 고양이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곳.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사는 세상의 꿈같은 모델이 거기 있었다.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이용환 지음) - 중에서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국내도서
저자 : 이용한
출판 : 북폴리오 201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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